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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Hwan life Introduction
 

태국에서 50만원으로 시작

 
 

Great Thai life 태국 김환 이야기

보통의 사람으로 태어나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다가
나름 주관을 가지고 자신감과 용기로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하루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여러가지 결정과 선택 그리고 쓰러지지 않기위한 자전거처럼 힘찬 패달을 밟아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태국의 '이치탄'이라는 음료수 회사 회장처럼 남들에게 존경받으며 새로운 재벌의 등장으로 나타나는 것을 교훈삼아 항상 배우며 생각하며 노력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다른 나와 비슷한 상황을 가진 사람들에게 약간의 힘이 되지 않을까 하고 내 주변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하지 못한 그런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시간이 가능할때만다 10년 목표로 삼고
 thaisoapschool 사이트에 태국 김환 이야기
를 써내려 간다.

태국에 오게 된 어처구니 없는 이유는??


나비효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것이다. 아마존 고릴라가 나비 날개의 먼지에 재채기를 해서 큰 태풍을 만든다는 그런이야기를 말이다. 태국에 오게 된 계기는 사실 아주 큰 뜻을 가지고 온것도 아니고 아주 개인적인 사소한 이유로 오게 되었다.

태국에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가진것은 여자때문이었지만 처음에 태국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 지금 이태원에서 자기 말로는 치료사라고 하는데 그냥 쉽게 말하면 병원 마사지사를 하고 있는 내 친구
'최재용' 때문이다.

이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
최재용'이다.

 이친구와 나는 참으로 질긴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
 이렇게 3개학교의 동창으로 지내고 있다. 성격은 아주 지랄같이 조용하고 헛소리
 는 아주 지멋대로 하고 혼자서 자뻑해서 웃어버리는 나와 성격이 다른 그런 친구
 이다. 중,고,대학교 동안 공부는 그저그랬고 지금도 그저 그렇다. 그저 그렇다는
 것이 나쁘거나 모자르는게 아니라 튀지도 뭐 그렇다고 모자르지도 않게 살고 있
 다.
 
 그런데 왜 이 친구 때문에 태국에 오게 된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다니는지?
 태국에 오게 된 사람들의 사연은 지인이 태국에 있다거나 여행을 왔다가 좋아서
 뭐 이런 사연들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좀 남달랐는데 어처구니 없게 용인대학교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당시 Youth APEC2005 스태프 활동으로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어서 마침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는 이 '최재용'이에게 부탁을 했다.
잘 진행되었겠지 학교를 이제 막 다니려는 순간 이 넘이 글쎄...'깜빡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당시 모아둔 돈은 100만원이었고 집에도 돈이 없고 아주 거지같이 생활고에 시달리던때였다.
그래도 일단 어떻게 돈이 해결되겠지 하면서 학교를 1개월간 잘 다니고 있다가 용인대학교 빌어먹을 조교가 학과 생활을 하지 않은 나에게는 학점이 좋아도 학자금을 줄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짤라 버렸다. 아니 짤려버렸다. (들려오는 얘기로는 이 조교는 어느 특수학교에 돈을 잘 내고 선생으로 뽑혀서 들어갔다고 한다.)

태국 전문 여행 투어캔버스 대표아주 거지같은 상황이었다. 열심히 다른 경영학과와 관광경역학 부전공을 신청해서 잘다니고 있었는데 거기다가 저녁 알바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잘 견디면서 다니고 있었는데 짤려버린것이다. 그래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가야 여행사'에서 근무하던 그때당시 '전응식부장님'을 찾아갔다. 용인대에서 강남역으로 내리면 바로 가야 여행사가 있었다. 대뜸 찾아가서 '학교 짤렸어요'라고 하니'가이드좀 할 수 있겠냐' 라는 답변이 바로 지금 내가 태국에 처음 오게 된 이유이다.
(현재 전응식 부장님은 '투어캔버스'라는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되셨다.
www.tourcanvas.com 정직하고 올바른 행복한 여행을 만들 수 있는 여행사임을 내가 보증한다.
 

캐나다 우프와 운명적 만남!! 2003년 7월


내 이력에는 나와 어울리지 않은 이력이 하나 있는데 바로 '캐나다 관광청 인턴'이었다.
캐나다 관광청에서 인턴을 1년동안을 해왔는데 그것을 소개하기 전에 그동안 했던 아르바이트들이 그에
연관을 가지게 한다.

군대를 가기전부터 신세계백화점에서 과일을 팔고, 김을 팔아서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서도 김을 팔았다.
일본손님들 대상으로 김을 팔고 있었다. 어차피 휴학하는거 그냥 길게 1년 휴학했다.
6개월 가량 일을 하고 나니 내손에 200만원 정도의 돈이 모이게 되었고 이것을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사느냐
캐나다로 우프를 하느냐에 선택을 하던 순간이었다. (일본은 이미 2번을 왔다갔다 한 상태였다. 친구가 유학중이었고 일본인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름은 토시야라고 한다. 이친구는 동경대 법대를 나와서 현재 일본 법무부에서 근무중이다. 나중에 다시 언급)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아보던 중 농장에서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받는다는 우프를 알게 되었고 캐나다가
그때당시 떠오르던 나라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100만원으로 JAL항공으로 표를 끊고 나머지는 캐나다 달러로 바꾸고 얼마 있다가 떠나게 된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다른장에서 심층있게 다루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이 다시 생기게 된것은 틀림없다. 그곳에서 철학을 생각하고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워킹홀리데이 박람회 당시 캐나다 우프로 부스를 차려서 나갔다.>
                          -의상 및 부스 소품은 캐나다 관광청 협찬-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너무 좋아서 다음까페 운영자까지 하면서 매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번개를 하였다.
사실 이때 캐나다 관광청에서 단순 창고정리를 시키려고 까페 방장인 인네(영국형)에게 먼저 전화를 했는데 다른 일정때문에 나한테 돌아왔고 7일짜리 창고정리를 일단 3일만에 끝내버리고 어설프게 1년동안 인턴생활을 해버렸다.
그러면서 다양한 친구들이 생겼고 '김수환'이라는 친구는 내가 소개시켜주어서 현재 알버타 관광청에서 열심히 근무중이다.
 

'캐나다 우프' 를 통해 내가 얻은것


우프란 (WWOOF: Willing Workers On Organic Farms)란 유기농법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는 세계 각국의 농가에서 일반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농장 체험을 시켜준다.
말이 시켜주는것이지 일시키고 보수 대신 먹여주고 재워주는것을 말한다. 가끔 가족들이 놀러가는데 함께 놀러가는 보너스도 있다.

다음까페에 처음으로 캐나다 우프라는 까페를 '인네오빠'라는 사람이 문을 열고 많은 사람들이 까페를 찾았다. 까페에서 1회 정모를 했는데 내 기억으로 한 4명이 왔던것으로 기억한다. 홍대였고 캐나다에 관련된 여러이야기를 듣고 캐나다 우프를 하기로 맘잡은 날이기도 하다. 캐나다와 태국의 공통 분모를 찾는다면 뭐 한국이 아닌 외국? 이런정도의 공통됨을 가지고 있지만 캐나다 우프를 하러간 그 용기와 깡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준것은 분명하다.

(몇년동안 어떻게 지내고 사는지 모르다가 우연찮게 다시 연락이 되었다. 알고 봤더니 옆동네 베트남 호치민에서 아모레 퍼시픽 현지직원으로 근무중이었다. 그래서 휴가차 우리 가게와 공장을 둘러보았다.)

※캐나다 우프를 준비하고 돌아온 과정을 돌이켜 본다.
롯데 백화점에서 열심히 양반김을 팔아 약 200만원을 모았다. 그때 한창 혈기 왕성할때이고 오토바이에 심취해 있었다. 비록 당시 텍트라는 오토바이를 중고 35만원 주고 사서 몇년간 모터가 멎을때까지 타고 다녔었는데 가와사키라던가 혼다라던가 뭔가 좀 그럴싸한 오토바이를 사려고 충무로 뒷골목을 서성거렸다.
당시 작은 갈등은 오토바이를 살것인지 아니면 캐나다 우프를 갈것인지 였는데 인네(영국형)을 만나고 나서 캐나다 우프로 방향을 틀고 양반김에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알렸다.
그때 그 일하시는 분이 이렇게 물어봤다. "몇달간 힘들게 일해서 하늘에 날려보내는것이 안아깝니?"
당연히 안아까웠고 세계로 나가는 한발자국이 되었다. 물론 그전에 일본도 한 두번인가 다녀왔지만 어설프게나마 일본어를 좀 했었고 친구도 있었다. 그러니까 완전히 초짜인 상태에서 간것이 아니기에 큰 모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12년간 영어를 공부하고 대학교에서도 공부하고 군대에서도 공부한 영어는 일본어의 몇배에 해당하는 모험임에 틀림없었다. 아는 사람도 갈곳도 받아줄곳도 없고 돈도 없었다.

큰 가방하나 친구한테 빌려서 배낭에 온갖 잡다한 것을 집어넣고 약 20키로를 채운 완전군장상태에서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다. 사실 군대를 좀 괜찮은데 나와서 완전군장해도 5키로 정도 무개를 채우고 행군을 했는데 그것도 힘들어서 벌벌거렸다. 뭣도 모르니까 가방에 온갖것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캐나다의 큰 땅덩어리를 이해하지도 못한채 마니토바주에 있는 브랜던이라는곳에 이메일 컨택이 되어 거기까지 가는것으로 하였다. 만약 지금 간다고 하면 아마 그보다 좀더 괜찮거나 보람있는 일을 찾아서 갔을것이다.

내영어실력은 수능때 50점대를 받은 나름 괜찮은 실력이었고 군대에서도 토익 공부를 꾸준히 하였던터였다.
이미그레이션을 무사히 지나서 공항에 도착하여 배가 고파 햄버거를 시키는데
"햄버어걸 플리즈"가 잘못 발음했는지 이상한 맛없는 햄버거를 시켰다. 그때 너무 힘들었다 서로 말이 안통해서 먹는것 자체가 힘들었고 버스 잘못타서 한참 돌아다닌것이 힘들었다.

처음 자보는 유스호스텔에서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도 안난다) 내가 처음부터 한일이 있는데 김옥란 유학원인가 거기 앞에 유명한 1$피자 집이 있었다. 거기서 피자를 먹으면서 한국에서 사온 말보로 레드를 한갑에 5$에 팔면서 피자를 먹었다. 이 아이디어는 (영국형을 통해서 얻은것으로 기억한다.)결국 담배는 다 팔고 자금이 생겨 중고자전거를 샀다. 캐나다는 자전거에 뭐 아이디같은것도 있고 헬멧을 쓰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벤쿠버도 너무 넓어서 걸어다니기 힘들었고 영어가 짧아서 버스나 지하철 타고 다니는것이 버겨웠다. 중고 자전거는 결국 나중에 마니토바로 이동할때 다시 한국사람에게 산가격보다 더 붙여서 팔고 마니토바로 이동하였다.
그때 한방을 쓰던 한국사람이 인라인을 가져와서 타보다가 어설피 언덕에서 크게 굴러 다리에 흉터가 남을정도로 사고가 나서 아파죽는줄 알았다. 어쨋든 그렇게 벤쿠버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그래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22시간인가? 버스를 겁나 오래타고 미니토바 브랜던이란 곳으로 가서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지치기 잡초제거하기 닭먹이 주기 등등 지금생각하면 좀 빡시었던 일을 했던것 같다.
어쨋든 그렇게 그집 식구들이랑 지내다가 세탁기를 마음대로 썼다고 여자가 구박을 시작하더니 마지막날
내가 이별편지를 남겨두고 떠나게 된날 차고에 물청소를 하지 마라 한것을 물청소를 해서 깨끗히 해라로 알아듣고 물청소 했다가 완전 개박살 떡실신되어서 맘에 상처를 입고 시내에서 차로 1시간 거리를 저녁 12시에 나와 버린것이다. 귀신은 둘째치고 동물들에게 먹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그날 운좋게 오로라 커텐을 본것을 아직도 기억난다 한 새벽 3시정도 되었을까 너무 지쳐서 근처 소고기 포장공장에 가서 사연을 말하고 마음씨 좋은 흑형이 시내 버스타는 근처까지 차로 데려다 줬다. 결국 버스터미널이 아직 안열어서 일단 길에서 대충 잤다. 우프책에 있는 그 근처 알버타에 있는 동네에 연락이 되어서 버스를 타고 다시 새로운 우프 농장으로 들어갔다.
정신이 이상한 주인할머니가 있었고 자식들도 있는데 과일을 따는 일을 주로 했다.
의외로 일이 널널했으나 티비가 제한되어 있고 시내까지는 갈 수 없었으며 나보고 왜 영어도 못하면서 왜 여기와서 고생하냐? (이말은 잘들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Study,.. Life Study"